처음 힙합을 듣기 시작했을 때 뉴욕은 어땠나요?
개인적으로 힙합은 제가 경험한 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었어요. 힙합이 뉴욕이라는 도시의 비트였죠. 42번가에서부터 브루클린, 브롱크스까지 어딜 가나 힙합이 있었어요. 공기에 떠다니는 느낌이었죠. 마법과 같았습니다.
어떻게 랩을 하게 되셨어요?
전 원래 보스턴에서 랩을 하고 있었어요. DJ 친구가 비트를 만들고 비트박스도 해줬죠. 그 때가 1980년대 후반인데, 우리는 싱글 하나만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주변에 촌놈들 밖에 없어서 저는 뉴욕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다들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죠.
뉴욕에 와서 저는 원룸에 살았고, 데모를 돌리고 돌아다니다 Wild Pitch라는 독립 레이블과 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제 데모를 마음에 들어 하는 레이블을 마침내 찾은 거였죠. 되게 여러 번 다시 만든 거였는데. (웃음) 믹스가 마음에 들게 되지 않아서 어떤 녀석을 몇 블록씩 따라간 적도 있어요. (웃음) 다시 믹스를 해주든지 돈을 돌려주든지 하라고 요구했죠. 뭐 그런 재미있는 기억들도 있는데, 아무튼 Wild Pitch가 제 데모를 가져가게 됐죠.
그런데 그 때 보스턴 애들이 와서는 제 데모를 가져가려고 했어요. 우리는 주먹다짐까지 해가면서 싸웠고, 결국 걔들은 보스턴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제가 그들을 떼어낸 거죠. 그땐 야생이었어요. (웃음)
그럼 Wild Pitch에서 Gang Starr가 탄생한 거네요?
예 그런 셈이죠. 제가 당시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레이블 직원이 자기 집 거실에서 한동안 지내게 해줬거든요. 그런데 그 거실에서 저는 Lord Finesse와 Premier의 데모를 직접 골라냈어요. 제가 레이블 경영진이었던 셈이죠. 제가 건진 건데 새끼들이 돈은 안 주더라고요. (웃음)
그럼 Premier와는 곧 만나신 건가요?
네. 전 곧바로 데모를 집에 가져가서 그 위에 랩을 해봤어요. 레이블 경영진에게 전화번호를 받은 게 있어서 바로 전화를 걸었죠. 바이브가 곧바로 느껴졌거든요. 그 때 Premier는 텍사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몇 주 안으로 뉴욕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어요. 그가 뉴욕으로 돌아오고 나서 우리는 만났고, 바로 작업을 시작했죠.
Premier의 작업이 마음에 드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마음에 든 건 재즈를 사용하는 방식이었어요. 4트랙으로 비트 위에 재즈를 깔았는데 정말 좋았죠. 브레이크 하나에서 루프를 딴 후에 그 위에 재즈 샘플을 얹는 방식이었어요. 나중에 스크래치나 어울리는 소리들을 더 담았죠. 결국 재즈와 브레이크가 제 마음에 들었던 셈이네요. 아까 말했듯이 데모 비트 위에 혼자 프리스타일을 했는데, 좋아서 밤새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함께 일할 때 저는 늘 Premier의 꾸준함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MC에게 비트가 가기라도 하면 '저거 내가 가져야 하는데!'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럼 첫 공동 작품은 'No More Mr. Nice Guy'네요?
네. 재미있는 작업이었지만, 그건 배워가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기도 했어요. 2주 만에 그냥 해치운 앨범이니까요. 사실 그건 앨범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데모에 가깝죠.
그럼 'Step in the Arena'가 첫 공식 앨범인 거네요?
네. 물론이죠. 그 때는 작업 기간도 더 길었고 훨씬 훈련된 상태에서 만든 거거든요. 지금까지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Gang Starr 앨범 중 하나입니다. 마법과 같은 작업 기간이었어요. 'Just to Get a Rep'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고요.
'Step in the Arena'는 확실히 Gang Starr에 중요한 앨범인데요. 그럼 'Daily Operation'과 'Hard to Earn'은 지금 생각하면 어떤 앨범인가요?
그 앨범들은 공연하기 정말 좋죠. 특히나 'Mass Appeal' 같은 곡은 대단해요. 요즘도 그 곡으로 공연을 시작하곤 합니다. 그 앨범들이 멋진 비트와 샘플로 채워져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Mass Appeal'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확실한 클래식이에요. 그 곡으로 제가 어떤 MC라는 것이 결정됐거든요. Gang Starr도 많은 관심을 받게 됐고요 덕분에 'The Arsenio Hall Show'에도 출연했죠! 당시에는 그 쇼에 출연한 사람한테는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죠. 그 곡과 앨범들 덕분에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Mass Appeal'의 가사는 가짜 이미지를 팔아서 대중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사람을 노래한 곡인데,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특정한 MC를 개인적으로 공격하고 싶지는 않아서 일부러 그렇게 가사를 썼던 거거든요. 하나로 묶어서 까는 거죠. 듣고 자기가 해당되면 찔렸겠죠.
인기 있던 곡 이야기를 하니 'Words I Manifest'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지네요.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한 곡이에요. 저는 스스로를 정신적인 믿음이 있는 래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사에 진실함을 담고 싶었어요. 가사에 특정한 주제를 담고 싶었던 거죠. 제게 진실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래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이 갖고 있지도 않은 다이아몬드 반지나 모피 코트,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하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는 하기 싫었어요. 실제로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한 거고 그렇게 앨범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 정체성을 정의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곡이에요.
리스너들의 존경을 받는 많은 프로젝트가 있지만, 가장 좋아하시는 걸 꼽는다면요?
기분에 따라 좀 달라지는데. (웃음) 'Step in the Arena' 아니면 'Moment of Truth'네요.
뉴욕은 많은 곡에서 주제로 다뤄지곤 했는데요. 당신의 가사에서도 많이 언급돼왔고요. 브루클린 거리를 걸으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브루클린이 저를 키웠다는 거예요. 그 동네가 저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줬죠. 그 거리를 지나가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아요. 작은 것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죠. 떨 한 개비도 특별하게 보입니다. (웃음)
이 질문을 받으니 재미있는데, 사실 지난 번에 저랑 Biggie랑 Lil' Cease가 같이 놀던 곳을 다시 찾았거든요. 거기서 떨 피우고 술 마시고 그랬는데. 그 때 Biggie에게 뮤직비디오 만들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Biggie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청 빠르게 떴죠! 정말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웃음)
많은 세월이 지난 만큼 추억도 많으실 텐데. 뉴욕에서 처음 공연했던 곳은 기억하시나요?
예 (웃음) 확실히 기억해요. 유니언 스퀘어 14가에 있는 호텔 Amazon이라는 곳이었어요. 공연장 분위기가 매주마다 바뀌곤 했는데, 제가 공연할 때는 테마가 '은하수'인가 그랬어요. (웃음) 그래도 Wild Pitch 레이블에서 제대로 처음 마련해준 무대였어요.
맹세하는데 그렇게 긴장했던 건 그때가 유일해요. 랩을 하면서 관중들과 호흡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 신적인 존재였던 45 King and the Flava Unit이 와있는 겁니다. 저는 겁이 났죠! 그리고 제가 신인이었기 때문에 야유하는 관중도 있었어요. (웃음) 그래도 끝나고 나서 박수를 받았고, 이후에는 겁이 없어지고 확고한 MC 캐릭터를 잡게 됐죠.
옛날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데. 911 당시에 뉴욕에 계셨어요?
예,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화벨이 계속 울려서 일어나 뉴스를 켰죠. 모든 사람이 그랬듯이 저도 굉장히 슬펐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어요. 세계 무역 센터는 이미 공격을 받은 적도 있고, 당시에 징조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었잖아요. 슬펐지만 큰 충격을 받진 않았습니다.
911 이후 도시의 분위기가 바뀌었나요?
예 확실히 바뀌었죠. 자유의 상징이던 도시가 좀 제한적이고 경찰들이 많은 곳이 되었어요. 물론 공공의 안전을 지키려는 좋은 의도인 건 알겠지만, 이 때문에 인종 갈등과 같은 문제는 무시되고 있어요. 노숙자와 길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로 간주되지도 않고요. 이는 뉴욕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진짜로 존나 짜증나요. 언론은 관심도 없고.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서 아이들이 길에서 자라는 일은 없어야죠.
당신은 힙합 역사의 일부이고, 뉴욕은 Gang Starr 역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뉴욕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뉴욕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원문: David Ma (Waxpoetics)
번역: YH (yhfactor.com)
RIP GURU.